그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내가 상처를 받아 버렸던 날이 있었더랬다.
그냥, 운이 안 좋았던 날이었을 뿐인데.
분명 울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술김이었는지 또 한 번 당신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더 크게 울었던 건 그 사람이었고.
수만 가지 감정이 혀끝에서 일렁였지만 도저히 말을 할 수 없었다.
회로는 멎었어도 눈가가 젖은, 손이 시렸을 당신이 걱정됐다.
이기적이고 추악한 마음도 고개를 내밀었다.
이 사람이 내게 정말 진심을 다하고 있구나, 라는 게 피부로 와닿아 안심이 됐다.
마음의 크기와 온도가 맞지 않아 혹여 부담이 될까 싶어 걱정을 하던 밤이 있었기에.
참으로 아둔하고 짧은 생각이었던 거다. 오랫동안 부끄러웠다.
감히 타인의 생각을 혼자 재단하고, 판단하려 했다는 게 얼마나 어린 생각인지.
이는 보이고 싶지 않은 새까만 마음이니 여기에 몰래 흘리려 한다.
생각이 고이다 흘러가며 마주하는 건 결국 당신이다.
군데군데 뚫려있는 빈틈 사이로 들어와 자리를 잡아버리고 만다.
그 위엔.... 울퉁불퉁하더라도 새 살이 차오르는 중이다.
타인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게 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말이 동의어가 될 수 있을까.
불쑥 솟아난 궁금증에 답은 생각보다 쉽게 내려졌다.
속상했어도, 어떤 일로 인해 쉽게 잠들 수 없었을 때마저도.
당신은 어땠을까, 싶다. 모든 걸 알 수 없겠지만 짐작하게 된다.
이 사람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을까.
잠은 제대로 잤을까. 이 사람은 지금 어떨까.
나와 당신이 하고 있는 걸 적어두고 진부하게 곱씹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사랑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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