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분 후에 깨워 줘
옆에서 곤히 잠든 당신을 두고 몰래 티스토리를 켜봤다.
졸려서 칭얼거리는 것까지 귀여울 줄이야.
당신이 자는 사이에 겁도 없이 키보드를 만지고 있어요.
눈썹이 움직일 때마다 눈치가 보이지만, 끝까지 달려보는 걸로.
혹시라도 타자 소리에 깰라 손에 힘을 잔뜩 빼고 살살....
그러니까, 토닥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분홍 줄무늬가 그려진 극세사 담요는 무릎에,
당신의 곰돌이 같은 뽀글이는 어깨 위에,
쪼끄맣고 건방진 모찌시바는 베개로.
사무실에 깔려있던 평화 사이로 안정감이 스며든다.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꾸만 하던 걸 멈추게 된다.
몇 번이고 본 얼굴이지만, 꿈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또 모르니까.
우리 애는 늘 잘 자야 한다.
왜? 내가 그러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나.
미간이 좁혀지진 않나, 눈썹이 찡그려지진 않나,
귀가 쫑긋거리나, 추워하진 않았나, 하는 사이클을 돌고 나면
곧게 자란 눈썹도 한 번 더 보고....
예쁘게 올라간 속눈썹까지 봐야 해서 바쁘다.
시간은 점점 빠르게 달려만 간다.
아무리 세게 쥐어도 손가락 틈으로 빠져나가더라.
나는 그저 아쉬워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모두가 똑같다는 사실로나마 위안 삼아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 집중하려 한다.
걱정만 하면 무엇이 남나. 하루라도 더 붙어 있어야지.
한 번이라도 더 저녁을 같이 해야지.
한 순간이라도 당신과 함께해야지.
당신과 약속한 삼십 분 중 십칠 분이 흘렀다.
아직도 할 말이 잔뜩 남았는데, 이거 봐.
이제껏 시간을 붙잡고 싶은 적은 없었는데요.
시간이 사람이라면 걔가 신은 구두에 광이라도 내고 싶네요.
야, 좀 봐주라. 내가 아직 덜 자랐단 말이야.
나한텐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니까....요.
이토록 평범하고 특별한 것 없는 나를 당신은 매일 귀여워한다.
물론 '당신'이 더 귀엽다. 아니, 멋있어.
멋있다는 게 농이 아니고 진심인데요.
하지만진짜귀여웡.
아무도 못 막아. 누가 날 막아? 당신도 안 돼, 돌아가.
아, 아니 가지는 말고.......
여튼, 반박은 불가하고요. 출구는 없습니다.
어어, 다시 와. 당신 자리는 여기야.
뭐, 비교를 하자면 끝이 없으니 이쯤에서 관두는 게 정신건강에 좋ㄱ.
깨는줄알고속으로정말놀랐다. 아니야, 아직 시간 안 됐어. 이십삼 분이라고, 깨지 마.
(당연한 건 없지만요) 당연하게 날 예뻐하고, 귀.... 어우, 이건 아직 안 되겠네요.
아, 아. 이겨낸다. 다시 갈게요. 레디, 셋, 고!
당연하게 날 예뻐하고, 좋아하고, 사랑까지 해 줘. 더 줘.
손도 잡아 줘, 안아도 줘, 더 세게 안아 줘, 더 꼭 붙어 있어 줘.
애처럼 구는 걸 정말 싫어했는데 나는 그냥....
한낱 애새끼가 돼버렸다.... 그렇게 됐다.
당신의 매일을, 하루 사이의 모든 순간들을, 그 사이에 끼인 찰나까지 응원할게.
내가! 으이? 누구 하나는 챙겨준다!
어우야자기또깰뻔했구나나진짜심장.임시저장도못햇아이참
지금은 여덟 시 삼십오 분을 지나고 있으며 이번엔 반대로 고개를 돌린 채 주무신다.
피로는 계속 쌓였을 테고 잔다고 풀릴 피로가 아니지 싶어 안쓰럽기만 하다.
저 머리 안에 들어있는 회로들은 얼마나 뜨끈뜨끈해졌을까.
하루빨리 요리부터 배워봐야겠다. 안 다치고 조심히 잘!
가지런하게 정돈된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데 그럼 깨실 듯해서 참기로 한다.
조금 쌀쌀하지만 잘 자고 있는 걸 보니까 마음이 따땃해진다. 이 정돈 참아 본다.
납작 시바야, 우리 애를 잘 부탁해. 너 하나 희생해서 두 명이 좋아하면 됐다.
토끼곰아, 너도 잘 부탁해. 조금 더 말랑해져도 좋을 것 같애.
벌써 여덟 시 사십사 분.
노래는 쉼 없이 돌아가고, 내가 겨우 붙들고 있는 건 당신과 같은 색의 매직 키보드.
심지어 세팅도 직접 해 주셨음. 눈길 닿는 곳마다 당신이 보인다.
스페이스 그레이 맥북 프로 16, 화이트 트랙패드, 실버 매직 키보드가 두 대씩.
커플 템이 아닌 듯한 커플 템인....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어지럽고 정돈되지 않은 데스크 셋업에 익숙해졌는데....... 어쩌지.
내 왼쪽엔 늘 있던 사람이 앉아 있어야 하는데.... 어쩌냐.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내 앞에 당신이 없는 게 어색하다.
옥상에 닿는 계단을 혼자 걸어가는 게 어색하다.
커피를 하나만 타러 가는 게 어색하다.
맥북이 하나만 켜져 있는 게 어색하다.
검은색 가방이 하나만 놓여있는 게 어색하다.
당신 없이는 반쪽밖에 안 남아 있을 것 같아 조금, 아주 조금은 무섭다.
지금 시간은 여덟 시 오십이 분. 풀고 있던 백준 문제를 마저 풀고, 후에 퇴고를 진행하겠다.
++ 퇴고는 모르겠고 날 것의 감정만 잔뜩 남겨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