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여행
그이와 있으면 매일이 여행 같다.
오늘(월요일은 지났어도 아직 눈 안 감았으니 아직 월요일임) 새벽에 어깨를 살살 흔드는 손에 깼다. 와, 나 진짜... 같이 잤는데 깨서 옷까지 입고 온 줄도 몰랐다. 나 잠귀 밝았는데 이상하네.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 줬다. 나름 로망이었는데 마침 이뤄봤다.
집에 어머니께 뭣 좀 가져다 드리고, 후딱 씻고.... 다시 사무실 겸 그이 집으로 출발~ 씻고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더워졌다. 예전엔 여름이 싫었다. 징그럽게 뜨겁고, 밝고, 끈적여서. 이젠 다르지. 괜찮아,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쪽에 가까울지도.
여름은 싱그럽게 뜨겁고, 장마는 눅눅하게 질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은 여름의 맛이 있기에. 맞닿은 피부 사이로 스미는 미적지근함과 뜨거움 사이의 끈적임이 좋아졌다. 물로온, 맞닿은 건 당신이어야지.
먼저 도착한 그이가 날 반겨줬다. 나 참, 강아지도 아니고 그거 잠깐 못 보다 만났다고 그렇게 반갑다. 매일 매 순간이 반갑다. 금식 때문에 배가 고팠을 텐데 다시 나갔다 와야 해서 포스틱 조금밖에 못 먹였다. 다녀올 동안 자고 있으라고 이불 안 치웠다는 말에 옙, 하고 누웠다. 쿼카를 베고 뭉뭉이를 안고, 담요를 둘둘. 근데 읏추.
다시 돌아온 그이가 누르는 도어락 소리에 막 깼다. 어, 어... 어? 오ㅑㅅ어!! 머쓱했다. 카톡 소리는 왜 못 들었지. 부러 켜뒀는데 하나도 못 들었다. 또 애매한 시간에 미팅이 잡혀 있어서 우리는 더 자기로 했다.
창밖에선 비가 쏟아졌다. 새하얗게, 하얗게 물들 때면 몸이 붕 뜬 기분이 든다. 저럴 때 그이가 밖에 있을 때면 애가 타지. 걱정이 돼서 발이 동동거린다. 이젠 눈앞에 당신이 있어서 괜찮아. 빗소리 듣기 좋다. 이제 잘까? 선풍기를 끄고, 에어컨 풍량을 낮추고 다시 담요를 덮고. 잘 자. 딱딱한 바닥이 마냥 익숙하진 않아도 온기가 닿으니 따뜻하더라.
알람이 울리고 그는 미팅에, 나는 다시 꿈나라에.... 생각보다 통화가 길어지셔서 그냥, 더 잤다. 깼다가 잠깐 뒹굴 한 뒤 zzz. 진짜 일어나야지 싶어 벌떡 깼다. 다 녹아 미적지근해진 밍밍한 커피가 영 별로였다. 아직 한참 일하고 계시길래 나는 해야 할 주문을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네 잔에 1L였나 하는 아메리카노. 최소 주문 금액 맞추느라 시켰다. 따라 마시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기사님이 다행히 벨을 누르지 않고 가주셔서 살금살금 들어올 수 있었다. 자소서를 얼추 써봤고, 그이는 미팅을 가장한 컨설팅이 끝났다. 다시 문명 5로 돌아가 현실을 저~ 멀리 보내본다.
이제는 맘, 아니, 식사를 할 시간. 그이가 삼겹살에 비빔면? 을 말하길래 칭찬해 드렸다. 천재가 맞아. 나는 김밥을 시켜서 라면이랑 먹을까, 비빔면을 할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삼겹살만 시켜서 비빔면! 그리고 비빔면엔 뭐다? 삶은 달걀이 아닐까. 물을 올리고 계란을 퐁당. 면을 퐁당. 배홍동 세 개에 계란 네 개, 삼겹살은 과했다. 인정. 배가 많이 고플 것 같길래 많이 드시라고 욕심 냈다가 좀 남겼다. 다음엔 비빔면 두 개에 계란 두 개 하기로 했다.
비빔면을 먹는데 문득 여행을 온 것 같았다. 필요한 건 다 있고, 아늑하고 편한 여행지.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그이랑 하고 싶은 게 참 많은데 부러 구체적인 시간은 빼놓고 얘기한다. 우리 다음에 ~ 뭐 하자. 하도 많아서 듣는 사람이 부담스러우면 어째.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 쪽, 다시 앉아 문명 ing ... 그이가 졸리다는 한 마디에 대강 접어뒀던 이불을 마저 펴고 누워버렸다. 잠이 오는 걸 어떡해. 사실 나도 자고 싶었다. 왜, 그런 하루를 한 번씩 기대하지 않나. 종일 함께 자다가 잠깐 일어났다가, 다시 낮잠이든 밤잠이든 불규칙하고 늘어지게 자보고 싶었다. 하루 사이에 해보고 싶던 걸 두 개나 이뤄봤다. 진짜 대단한 사람 같애.
쿼카 하나, 뭉뭉이 하나를 납작하게 만들다가 뒤척였는지 그이랑 눈이 마주쳤다. 팔베개를 해 주시길래 냉큼 파고들었다. 요새 운동해서 부피가 커진, 더 단단해진 팔에 내 볼이 납작해지고야 만다. 한참을 자다가 일어났다. 이 평화로움을 사랑하지 않곤 못 배기겠다.
집에 와서 잘 자라는 말과 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던 그가 사랑스럽다. 이젠 정말 자야겠다.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는데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보시는 분들도 편안히 주무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