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었어

2Sail 2021. 4. 16. 02:15

당신은 실업자가 되었다. 꿈이 사라지니, 평화롭구나. 당신의 심장을 쿵쿵 두드리던 ㅡ 이런 지루한 비유도 이젠 필요 없겠지만 ㅡ 커다란 손이 사라졌구나. 유리창 안에서 손을 흔드는 얼굴들이 보인다. 실업자가 된 첫날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두꺼운 커튼을 달고 잠을 자겠지. 당신을 위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없으니, 이젠 당신을 위해 영화를 찍는 거야. 그것은 어떤 계절의 노동과 같을까. 팔과 다리가 없는 포르노의 스타일로 당신의 거룩한 무죄를 축복하면서. 무한히 떨리는 눈꺼풀을 덮고 이제 꿈의 밖으로 걸어 나가는 거야. 누군가 먼지투성이 푸른 관뚜껑을 열고 얼어붙은 당신을 깨우러 올 때까지

 

- 이기성 <채식주의자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