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도

1008, 제주시에서 서귀포시까지 : 아르떼뮤지엄, 루나폴

2Sail 2023. 10. 17. 14:44

평소에 여행 다니던 것보다 이르게 일어났다.

그가 먼저 일어났다. 제주도 시차가 맞나 봐.

더 늦잠을 자고 싶지만 여기는 제주도잖아....!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캐리어를 다시 챙겨서 출발!

 

밥부터 먹고 출발해야지 싶어 근처에 있던 '국시트멍'에 갔다.

친구들한테 제주도 맛집 추천 좀 하며 굽신거렸을 때 첫 번째로 나온 곳이다.

제주도에 고기국수가 그렇게 유명하다매. 난 몰랐지.

 

마침 감기로 고생 중이었고, 첫 끼라 국수가 괜찮았다.

고기국수 가게도 몇 군데를 봤었다.

평점과 주차 여부, 동선을 보니 국시트멍이 괜찮았다.

주차장이 몇 대는 들어갈 줄 알았는데 많이 협소했음.

대신 바로 옆에 공영주차장이 있었고, 일요일이라 무료였다. 이게 맞지!

 

맛도 따뜻하고 부드럽고 짭짤한 간. 누구나 무난하게 잘 먹을 수 있는 맛.

그의 말로는 라멘 국물 느낌이라고 했다. 이 익숙한 짭짤함이 뭔가 했더니 라멘이었다.

오래간만에 그의 입맛에 맞는 겉절이도 있었다. 액젓 맛이 많이 나는 김치. 두 번 메모.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야. 내가 김치도 담그고 싶어 졌다니까?

김치 담그는 게 수고스러워도 그이가 잘 먹을 수 있다면 하고 싶다.

 

점심을 먹는데 아직 잠이 덜 깨서 커피가 절실했다. 졸려....

오전부터 진짜 배부르게 먹고 코앞에 있던 '제주 호랭이' 카페로 직진.

어딜 가나 아메리카노는 있을 테니까 브랜드는 상관이 없다.

평소 같았다면 아아 두 잔이었겠지만 이번엔 따뜻한 걸로 시켰다.

감기가 뭐 이렇게 오래가는지 에잉.

출발하기 전에 약도 먹고, 시럽도 쭉 짜 먹고 다시 출발!

벨트만 했는데도 신이 나고 신호를 기다리는데도 신이 났다.

 

점심을 하고 우리가 가본 곳은 '한담해안산책로'.

어떻게 처음부터 이렇게 예쁠까. 바다가 어쩜.......

해도 좋아서 도톰 가디건도 벗고 다녔고, 선글라스도 썼다.

관광객 티 좀 내고 다녀볼까? ㅋㅋ

당신은 선글라스로 가려도 잘생겼다는 것만 알아둬라. 진짜.

차를 가지고 다닐 테니 이거 저거 넣어 다닐 쪼그만 가방을 가져왔다.

물티슈도 넣고, 여행용 칫솔 세트도 두 개, 선크림, 그의 파우치, 내 약 파우치.

음, 가져오길 잘했지. 에스쁘아에서 뭐 샀더니 같이 딸려왔었다. 잘 썼음.

 

그에겐 이미 말해버렸다. 한담해안산책로는 프러포즈 장소 후보지 중 하나다.

.... 그렇다. ㅎㅎ.

너무 생각을 거치지 않고 말부터 했나? 하지만 뭐든 당장 얘기하고 싶은걸.

윤슬이 참 아름다웠다. 이런 간단한 표현으로는 성에 차지 않지만 일단 아름다웠다.

해도 좋고, 바람도 좋고, 내 옆엔 당신이 있고. 더 바랄 게 있을까.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살짝 덥기까지 했다. 아, 산책로에 특이한 벌레 같은 게 있었다.

꽤 걸으면서도 몰랐는데 그는 진작 봤었고 부러 얘기를 안 했다고 했다.

다정하고 사려 깊은 사람.... 고마워. 벌레싫어두번싫어.

여튼. 우리가 진짜 제주에 오긴 했나 봐. 안 믿겼는데 말이다.

 

다음으로는 '서부농업기술센터'.

10월에 꽃이 피어있는 곳이 몇 군데 없었다. 그한테 예쁜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촛불 맨드라미가 예쁘게, 많이 피어있어서 가자고 했다.

네비를 찍고 갔는데 문이 닫혀 있길래 어....? 하고 순간 좌절했다.

한 번 더 확인할걸. 오늘이 일요일인데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싶었다.

여기서 또 그는 날 감동시키고 만다. 다른 출입구가 있을 거라며 조금 더 가보자고 했다.

그리곤 진짜 다른 출입구를 찾아냈지. 네비가 알려준 곳은 아마 직원용이었던 것 같다.

당신은 길을 찾아내네. 아, 이제 생각해 보니 당신이 내 길이었던가.

 

생각보다 거름 냄새가 많이 나서 당황했지만 빠르게 둘러보기로 했다.

오래 있을 곳은 아닌 듯싶었다. 도시 촌놈은 나약하다. 인정.

선인장 전시관부터 가봤다. 다양하고 독특한 생김새의 선인장이 많았다.

쟤네가 야생에서 자랐으면 도대체 얼마나 컸을까....? 싶은 것도 있었고.

선인장 하나에도 추억이 깃들었다. 전에 본 비슷한 선인장도 생각났다.

또 하나의 추억을 쌓으며 예전에 담아둔 소중한 기억을 불러오는 시간들.

시간 사이로 사랑이 스며드는 것 같아 마음이 녹아내리곤 한다.

 

야자수가 높이 뻗어 있고, 그 경계 안으론 촛불 맨드라미가 가득했다.

아, 오기 잘했다. 예쁘다. 당신이랑 예쁜 걸 같이 보니 행복했다.

요새는 행복할 때 그에게 자주 이야기해 주려 한다.

왜? 당신 덕분에 행복한 거니까. 당신이 들어줘야지.

꽃밭을 사진으로 담는 그의 뒷모습을 찍었다. 액자식 구성을 좋아한다. ㅋㅋ

그이는 뒷모습마저 잘생겼다. 곁에서 떨어지기 싫게 만든다. 

어어, 누가 꽃이지~~~~? 나는 잘 모르겠네~~

 

다음으로는 어디를 갈까 했다. 슬슬 시간 걱정도 했어야 했다.

8시에 차를 반납하고 다시 렌트를 해야 했어서, 7시 반쯤엔 공항 근처에 있어야 했다.

지금 더 내려가는 건 무리고 올라가면서 다른 곳을 가던지 하기로 했다.

근처에 노형 슈퍼마켙과 아르떼 뮤지엄이 있었다.

사실 노형 슈퍼마켙은 애초에 큰 기대가 없었다.

일요일에 비가 올지 몰라 후보군으로 넣어뒀던 장소다. 아르떼 뮤지엄도.... 사실은.

그래도 미디어 아트 전시를 한 군데는 방문할 생각이었다. 워낙 여러 곳이 있었으니까.

 

일단 올라가는 길에 아르떼 뮤지엄을 다녀가기로 했다. 운전은 그가, 예매는 내가.

손발이 척척. 그의 운전에 방해가 되지 않게 나머진 알아서 척척하려고 노력한다.

그새 도착하고 주차까지 완료~ 입장권을 뽑으려고 했더니 시간이 약.... 삼 분 정도 남았었다.

예매 후 삼십 분이 지나야 입장이 가능하던가 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그이가 휴지 하나 살까 했었는데 막상 편의점 앞에선 안 사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입구 코앞에 세븐일레븐이 있어서 그냥 데리고 들어갔다. 휴지 하나는 있어야지.

이 휴지는 여행 내내 쓸 일이 있었고 돌아와서는 차에 넣어뒀다. ㅎㅎ

 

드디어 입장~ 내부가 되게 어두웠다. 그래서 그의 손을 꼭 붙잡고 다녔다.

거기서 딱 하나 건졌다. 우리는 다니면서 사진을 정말 안 찍는 편인데 말이다.

안에 거울방 컨셉을 가진 전시공간이 있었다.

그는 정면을 보고 계셨고, 나는 그 옆에서 아~ 하고 입 벌리고 찍혔다.

밖에 내보이긴 부끄러운 우리 시그니처 뭐시기.

나와서 사진을 다시 봤는데 말이다. 되게.... 되게. 되게다.

마냥 해맑고 행복해 보이는데 바보처럼 나왔다. 하하.

어떻게 나오든 웃겼으니 됐다. 아, 맞다 감상평.

그와 놀던 것만 생각나 감상평 안 적을 뻔했다.

예.... 사진 찍는 걸 즐겨하지 않으신다면 비추천입니다.

이렇게 가성비 전시관이었다고 싶었다. 내부에 비해 예매 가격은 음.

포토존들 많고 다들 사진 찍으러 오는 데인 건 알겠는데요.

관람 에티켓은 지키셔야 하지 않나 싶다. 누군 소리를 지르며 다니더라.

 

이제 공항 쪽으로 출발!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에 체크인했다가 다시 나갈 생각이었다.

마침 공항 근처에서 흑돼지 집을 알아봐 뒀던 터라 이동~~

둘째 날 저녁을 먹은 곳은 '제주공항 그때그집'이다.

가는 길부터 공항 근처로 해안도로를 타고 갔는데 되게 예뻤다.

가게는 오션뷰였고, 도로 하나 건너 바로 바다가 있었다.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그와 바다를 보고 있었는데 또 행복하더라.

몇 번을 가면서도 별생각 없던 제주도가 사랑스럽게 보였다.

 

흑돼지와 고사리, 소시지와 버섯이 나왔다. 생각보다 버섯이 일등공신이었다.

고사리도 구워서 같이 먹었다. 음, 이 집 괜찮네.

바싹 구워졌던 걸 먹어 질기다고 하니 이거 먹으라며 고사리도 챙겨 주신다.

고기는 항상 구워주고, 먹을 때마다 챙겨주는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가 있나.

마지막까지 한 점 더 먹으라며 접시에 올려준다. 나 이 남자한테 사랑받네.

그에게 늘 고마울 따름이다. 나도 사랑만 가득 담아 줘야지.

 

밥도 먹었고, 호텔 체크인 시간도 지났으니까 짐만 풀고 가기로 했다.

로비부터 앤틱하고 격식 있는 모습을 갖췄다. 그르니까, 예뻤다.

심지어 피아노는 라이브로 치고 계셨다. 몰랐다. 

엘리베이터가 압권이었다. 옛날 백화점에서 보던 캡슐형 투명 엘리베이터.

 

막상 들어와서 짐 올려다 두니까 나가기 귀찮아졌다. 배도 부르고....

렌트 반납하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쫌만 누워 있다가 가자.... 아무것도 안 해도 그와 있으면 시간은 뛰어간다.

지 혼자 뛰어가고 있어. 숨도 고르고, 어? 좀 천천히 가면 안 되겠니.

 

이번에 받은 차는 EV9! 그이가 궁금하다고 해서 골랐다.

전기차 처음 타본다. 그리고 렌터카에 무슨 옵션이 이렇게 많나 싶었다.

렌터카는 깡통이 기본 아니던가. 온갖 신기한 옵션이 있었다.

 

차를 받고 예매해 뒀던 루나폴로 출발~

가는 길에 갑자기 시트가 움직인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운전자석 허리 시트가 꿈틀꿈틀. 올라가고 내려가는 걸 때마다 얘기해 줬다.

별것도 아닌 건데 어찌나 웃기던지. 

 

루나폴 도착! 꽤 걸어야 해서 그는 신발끈을 고쳐 맸다. 꽉끈.

해가 지니 제주도라도 쌀쌀했다. 예매해 뒀던 표를 뽑고 잠깐 기다렸다.

루나폴 내부 사진만 봤지 코스 얘기는 못 봤었다.

일정 인원 수가 되면 설명을 듣고 입장시키고, 또 다음 팀을 받는 식이었다.

캐스트 분이 안내해 주시는 대로 입장했고, 다음 캐스트 분을 마주쳤다.

어.................. 뮤지컬 같은 짧은 공연이 있... 었다?

어.... 그렇다. 스킵이 가능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본격적으로 내부에 들어갔다.

입구 근처에 작은 호수가 있었는데 쪼그만 달 조형물이 떠있었다.

사진 찍을까 싶었는데 사람들이 밀린 걸 보고 아냐, 그냥 가자. 했다.

기다리면서까지 찍을 건 아닌 듯. 그냥 순간을 당신이랑 더 즐길래.

생각보다 약간 트래킹에 비슷한 길이었다. 주로 1인이 다녀야 하는 길이었다.

길이 올록볼록한 곳이 많아 발을 헛디디기도 했다.

중간에 감성으로 네온사인 메시지도 넣어놨는데 말이다.

아, 좀. 술집에 온 것도 아니고.

술집에 네온사인 유행시킨.... 하, 왜 그러셨어요. 이상한 감성들에 다들 취했다.

산을 사다가 꾸며놓은 듯했다. 오히려 낮에 보면 더 예뻤을 것 같은데.

 

한 바퀴를 돌고 이제 나가야지 싶어 출구를 찾자고 했다.

음. ㅋㅋ. 캐스트 분이 입장할 때 알려주신 출구를 까먹고 있었다.

그가 없었으면 여기 나가지도 못할 뻔했다. 자갸, 고마워....

나 두고 가면 안 돼. 꼭 챙겨가.

 

엄청난 하루가 끝나간다. 호텔에 올라와서 씻으니까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

누구 덕분에 바다가 보이는 침대에서 잠들 수 있었다.

 

그와 만나는 초반만 해도 무서웠다. 정말로 무서웠다.

행복이 너무나 두려웠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었다.

내게 온 행복이 나를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닐까 했다.

당신을 너무 좋아해서 무섭다고 토해내듯 고백도 했었다.

그리고 그는 안아주며 말했다.

너무 좋아해서 하나도 안 무섭다고.

 

행복이 두렵지 않고, 낯설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당신이 내게 안정이고, 확신이며, 행복이니까.